발췌-拔萃/소리

사랑을 말하다

한 가람 2008. 4. 15. 04:07


오늘은 하루종일 기분이 별로였어.
아마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랬겠지.
이 복잡한 서울 시내에 웬 꽃나무가 이렇게 많은지.
색깔들은 또 왜 다 그렇게 요란스러운지.

저녁 땐 친구들을 만났는데
그 중에 난생 처음 해외여행을, 그것도 출장으로 다녀온 친구가
여행선물이라고 티셔츠를 사왔더라?

관광객들에게 파는 티셔츠가 뭐 대부분 그렇지만
그것도 좀 그랬어.
가슴 팍엔 그 나라 국기가 조잡하게 인쇄돼 있는데다가
한번만 빨아도 10년 입은 듯 늘어질 옷감에.
나는 그 친구를 놀리기 시작했어.

너 이거 나한테 버리는 거냐.
차라리 열쇠고리를 사오지 그랬냐
자신 없으면 깔끔하게 담배나 사오지.
그리고 또 뭐라 그랬드라?
그런 얘기도 했었구나.
미련하게 이걸 첫번째 도시가서 사서 계속 들고 다녔냐?
여행 처음 가보냐? 아- 너 여행 처음 가봤지.

내 빈정거림이 길어지면서
결국 나는 그 친구를 진심으로 서운하게 만들어버렸지.
아차 싶었지만 그땐 늦었고.

나 여전히 이래.
고맙다는 소린 멋대로 생략하고
미안하다는 말은 부끄러워서 못하고
늘 비비꼬아 말하고
줬다가도 뺏고 싶게 만들고
그래서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한테 상처주고
결국 그런 나를 내가 미워하면서 잠들고

"야. 뭘 이런걸 다 사왔어.
짐도 많았을 텐데.
그냥 열쇠고리처럼 간단한 거 사오지. 암튼 고마워."

난 그 마음을 똑바로 말 못해서 오늘 친구를 화나게 했어.
1년 전에 니가 나한테 정색하면서 말했을 때.
"마지막으로 물어볼게. 너 날 사랑하긴 하니?"
나 그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해.
그런 걸 왜 꼭 말로 해야하냐고
그런 질문 넌 지겹지도 않냐고. 집에 가자. 그만.

"당연히 사랑하지. 너도 알잖아."

그 말을 똑바로 못해서
그대를 떠나보냈던 나는
그대를 잃고도
아직 정신을 못차리고 이렇게
남들을 화나게 만들며 살고 있습니다.

꽃피는 봄이 이렇게나 싫은건
내가 어울릴 수 없어서.
내게 손 내미는 사람은 모두 상철 입게 만드는 나는
가위손처럼
겨울속에서만 꽁꽁 갇혀 살아야할 것 같아서.
화창했던 봄날.
그대는 어디서 누구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을지
이제는 물을 수도 없어서.


사랑을 말하다.


글: 푸른밤 그리고 성시경입니다
사진: Birthe Piontek
출처: 푸른밤 그리고 성시경입니다